먼저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악한 일을 많이 한 여자를 세명 꼽으라면

장녹수,장희빈,정난정을 대부분 꼽을 것입니다.

MBS월화드라마"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나오는 장녹수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장녹수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태어난 시기는 알수가 없습니다.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천민의 신분으로 살아야 했고

집안이 가난해서 시집을 여러 번 갔으며 나중에는 제안대군(예종의 둘째아

들)의 노비로 들어가 거기서 노비와 다시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다 제안대군의 눈에 들어 가무(歌舞)를 익혀 탁월한 능력을 보여줌으로

써 소문이 널리 알려지자.

 

연산군이 소문을 듣고 흥청(興淸-왕을 가까운 곳에서 모시는 기생)으로 뽑혀

궁궐에 들어오게 됩니다.

영리한 성품으로 연산군의 마음을 흔들어 입궁직 후 종4품의 숙원에서 이듬

해에는 종3품의 숙용으로 초고속 승진 할 정도로 총애를 얻게 됩니다.

연산군시대 유일하게 연산군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장녹수였지만

그녀와 그녀의 측근들은 권세를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으며 연산군시대의

종말을 재촉하게 만듭니다.

오죽하면 장녹수의 노비들도 사대부에게 행패를 부릴 정도였으니······

결국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시대는 끝나고 연산군폭정의 핵심이었던

그녀는 결국 참형으로 생을 마감했고

죽은 후에도 그녀의 시체에 분노한 백성들이 돌을 던져 돌무더기가 생길 정

도라고 하니 정말 비참한 말로였습니다.

후대에 사는 저희들에게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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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많은 화가들중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3대 화가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시대별로 나열하면 안견,김홍도,장승업이 되겠습니다.

그중 먼저 안견은 요즈음 방영하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사임당-빛의 일

기"를 통해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 안견 『몽유도원도』 -

안견은 조선초기인 세종때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입니다.

세종시절 정4품인 호군(護軍)으로 파격적인 승진한 것으로 보아 그의 능력이

뛰어나 세종의 총애를 받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견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어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모르고

또한 그의 작품 역시 추정되는 그림은 다수 있으나

확실히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몽유도원도」가

유일합니다.

「몽유도원도」는 안견이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꿈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으로서 중국의 화풍에 다른 여러가지 화풍을 받아들여 새로운 화

화풍을 만든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거기에다 당대 김종서,신숙주,정인지,박팽년,성삼문 등 사대부들이 쓴 칭찬하

는 글이 친필로 붙어 있습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서예적 가치또한 높은 작품입니다.

「몽유도원도」는 왼편은 현실세계를 오른편에는 꿈 속의 도원세계를 그리고

현실세계는 정면을 바라보고 왼편의 도원세계는 위에서 보는 부감법으로 그

려졌다.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 덴리대학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일본으로 간 시기는 임진왜란때 인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안견은 그 당시에도 가장 뛰아난 화가로 인정되었으며

사후에도 조선후기까지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많았습니다.

- 김홍도 『금강사군첩』 -

다음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천재화가인 김홍도에 알아보겠습니다.

1745년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해 입니다.

증조할아버지가 만호벼슬을 하신 것으로 보나 집안이 원래 무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김홍도는 1765년 영조가 71세 되던 해에 큰 잔치를

열었는데 이를 위해 병풍을 만들었는데 당시 갓 스물이 이었던 김홍도가 그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을 보아서는 20살이전에 도화원 화원으로 들어간 것으

로 보입니다.

- 김홍도 『안릉신영』 -

그후 영조의 어진과 왕세손의 초상화를 그리며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

았으며 그 인연으로 정조는 김홍도가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수 있도록 적극

적으로 후원하게 됩니다.

"김홍도의 그림을 구하려는 자들로 인해 잠자고 먹을 시간도 없을 지경이었

다" 는 말이 전할 만큼 그림으로 명성이 대단했습니다.

그로인해 정조시대에는 사포서의 감목관,안동의 안기찰방,충청 연풍현감등

벼슬을 하였습니다.

많은 그림을 남기셨고 당대의 최고의 화가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늘 생활은 궁핍했고 건강도 좋지 안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술가로서는 낭만적이었지만 좋은 가장은 되지 못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매우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키도 크고 성격또한 좋아 그를 보면 좋아하지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네요.

요즈음 세상에 태어났어도 최고의 화가가 되지 않았을까요.

김홍도가 그린 다양한 그림중에도 가장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풍속화이고 인물의 살아있는 듯한 묘사와 장면의 극적인 구성이 탁월하다

할 것입니다

- 김홍도의 풍속화 -

그의 풍속화를 통해 그 시대의 서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어

사료적인 가치 또한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300여점의 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호탕한 필묵법과 정교한 묘사력으로 조선시대의 마지막 천재화

가인 장승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장승업 『군마도』 -

1843년에 태어났고 1897년 55세에 생을 마감합니다.

어릴 때는 고아로 자라 그의 출생에 대해 정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본관은 대원(大元)이고 호는 오원(五園),취명거사(醉暝居士),문수산인(文峀山

人) 입니다.

그는 단원 김홍도를 의식하여 스스로 오원(五園)으로 할 만큼 화가로서의 자

부심은 강했습니다.

장승업은 이응헌의 집에서 기거하며 중국 유명한 화가들의 서화를 접하

고 그림에 눈을 뜨게 됩니다.

장승업은 산수,인물,화훼 등 다양한 소재를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여 짜임새

있는 구성과 개방된 공간,힘차고 능숙한 필법,강렬한 묵법과 섬세한 설채법

의 대조 등 그림전체의 생동감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에서 중국화풍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

고 합니다.

 

그래도 워낙 그림의 수준이 뛰어나 당시에는 제일의 "신품(神品)화가"로 칭

송받았습니다.

그는 망해가는 조선을 지켜보며 화가의 일생을 삶으로서 안견,김홍도가 실던

시대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안견,김홍도 못지않은 창작력과 고도의 세련미 넘치는 그림을 보여줍

니다.

장승업 또한 명성이 자자하여 정6품의 관직도 받고 고종의 명령으로 궁궐에

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나 성격이 워낙 자유분방하여 오래 궁에 있지못하

고 나와 고종의 노여움을 사기도 합니다.

그리고 민영환,흥선대원군,민영익,오세창 등 당대의 유명한 인사들이

그를 후원하였습니다.


- 장승업의 작품 -

장승업은 19세기 말 암울했던 시대를 밝히는 찬란한 예술혼이었으며

조선말 회화사적으로 지대한 공헌하였습니다.

또한 모든 회화분야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을 확립하였습니다. 

그의 화풍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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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3대 도적은 홍길동,임꺽정,장길산 입니다.

그중에 요즈음 MBC 월화드라마"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 나오는

홍길동은 실존인물입니다.

드라마와 같이 연산군 시절에 충청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농민무장대의

지도자였습니다.

그 당시 양반지주층들에 의해 토지소유가 늘고 그로인해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산 속으로 들어가 양반지주들이나 관청을 습격하여 살아가는

농민무장대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그 중 대표적인 농민무장대가

홍길동의 농민무장대였습니다.

 

홍길동은 관리의 복장을 하고 스스로 '첨지'라 하고 많은 무장농민들을 이끌

고 마을의 관청이나 양반지주들을 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체포되어 의금부에서 취조당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500년 음력10월22일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 강도 홍길

동을 잡았으니 기쁨을 이길수 없습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음력10월28일에는 의금부에서 홍길동에게 접대를 받고 그에게 집까지 주선

준 엄귀손의 처벌을 건의해 왔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반역이나 강상(綱常)의 죄를 저지른 중죄인을 왕명에 따라 조사.처벌하는 의

금부에서 홍길동사건을 담당하였고 홍길동과 엄귀손이 결탁하여 활동했다

는 것을 알수 있다.

또한 그 이후 기록에도 홍길동이 첨지(중추부의 정3품 관리)를 사칭하여 관

청에 드나들면서 가탄없는 행동을 했고 이를 방조한 관리들을 징계해한다는

건의가 있었다고 기록한 것을 보아 충청도를 중심으로 큰 세력을 떨쳤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하여 1500년~1501년 두 해의 걸쳐 의금부의 수사가 이루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와 관련해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홍길동의 신분이나 행적은 자세한 기록이 없어 전해지지 않고

추정컨대 의금부에서 조사를 받는과정에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

다.

그후 한글의 최초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또한 조선중기에 활동한 임꺽정도 홍길동을 본 떠 당상관의 복장을하고 관

부에 출몰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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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허준과 대장금을 연출한 이병훈 감독이 세번째로 만든 2012년 10월부터 방영되었던 "마의"는 이병훈감독의 전작인 "허준"처럼 사극의학드라마라고 할수 있었습니다.

"마의"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백광현은 실존인물로써

허준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사신 분입니다.

백광현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아서 자세한 인생역정은 알 수 없으나

본관은 임천(林川)이고 자는 숙미(淑微)입니다.

그리고 정확한 생몰년도는 없습니다.

침술은 어떻게 익혔는지 모르나 독학으로 처음에는 말의 병을 치료하는 마의로 출발하였고 그러다가 사람의 종기도 침으로 째서 치료를 해보았는데

완치가 되는 환자가 많아지면서 명성을 쌓았고 사람들로부터 신의(神醫)라고도 불렸다.

 

그래서 시험을 치지는 안았으나 뛰어난 종기치료술로 현종때 치종(治腫)교수로 내의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후 현종의 목이 난 종기와 효종의 비 인선왕후의 발제종창(髮際腫瘡),

숙종의 목구멍종기와 배꼽종기등을 치료하여

1670년 어의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후 강령현감,포천현감을 거쳐 지중추부사,숭록대부에 까지 오르게 됩니다.

백광현은 우리나라에서 피부를 째서 치료하는 외과적 치료법을 처음

시작한 인물로써 그 의의를 둘수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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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24대 왕 진흥왕은 신라가 개국한 이래 최대의 영토를 가진 군주였습니다. 물론 통일신라 이전이지요.

역사시간에 진흥왕은 단약적성비와 창녕비(경남 창녕),북한산비(서울),황초령비(함남 함흥),마운령비(함남 함흥) 4개의 순수비를 세운 것으로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KBS월화드라마"화랑"에서 박형식이 맡고 있는 삼맥종이 진흥왕의 본명입니다.

그럼,진흥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진흥왕은 23대 법흥왕의 동생인 입종 갈문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인 김씨부인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신라왕족들도 혈족간의 혼인이 이루어졌습니다.

진흥왕의 왕비는 사도부인 박씨이며, 자녀로는 동륜과 사륜(진지왕)이 있습니다.

진흥왕은 큰아버지이자 외할아버지인 법흥왕이 후사없이 죽자 그 뒤를 이어 7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나이가 어리다보니 왕태후(지소태후)가 섭정을 하였습니다.

왕태후는 진흥왕이 즉위하자마자 죄수를 사면하고 관리들의 벼슬을 한 등급씩 승진시켜주었습니다. 또한 왕권강화를 위해 이사부를 병부령(지금의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여 국가의 모든 군사조직을 맡게 하였다.

이사부는 지증왕때 우산국(울릉도)점령한 장군으로써 진흥왕초기 왕태후를 도와 군사와 정치를 이끌었던 사람입니다.

또한 왕태후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은 최초의 홍륜사를 짓고 불교를 장려를 했으며 삼국통일의 기틀이 되었던 화랑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진흥왕이 18세가 되던 551년부터 친정(親政)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혈기왕성한 진흥왕은 더이상 변방의 작은 나라로 지낼수 없다고 생각하여 본격적인 영토확장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래서 551년 그당시 고구려가 대내외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 백제의 성왕과 함께 고구려정벌에 나서 한강유역일대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으나 2년뒤 김무력을 시켜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와 나누어가졌던 것을 점령하여 신라가 완전히 한강유역일대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로인해 100여년 이상 지속된 나제동맹은 깨지게 되었습니다.

남으로는 562년 이사부장군에게 대가야을 공격하게하여 가야를 점령하였고 고구려가 계속 내분으로 인해 혼란을 틈을 타 동해안을 따라 영흥만일대까지 차지하여 신라가 개국이후 최대의 영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진흥왕은 568년 집권후반기부터는 자신이 개척한 영토를 직접 순수(중국의 황제인 천자가 천하를 돌아다니며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관들이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있는지 살펴보던 중국의 풍습)하면서 백성을 위로하고 포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순수비를 세웠는데 지금 남아있는게 북한산순수비,황초령순수비,마운령 순수비등이 있습니다.

-북한산 순수비-

영토확장외에도 진흥왕은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가야출신 우륵을 발탁하여 음악발전에 기여하도록 하였고 대야찬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國史)를 편찬토록 하였습니다.

그러다 마흔세살 되던해인 57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실제 진흥왕이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알고 KBS월화드라마"화랑"본다면

재미를 배가시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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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여 빛이여 아득한 하늘이여

나의 백마가 울부짖는다.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바람을 가르는 갈기

나 소리 높이 외친다. 나 소리 높이 외친다.

위대한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오늘도 달린다.

 

원탁의 기사 주제가입니다, 김국환씨가 불렀지요.

정확히 언제했는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80년대 초반이었는다는 거

그당시 남자 어린이들은 장남감 칼 엑스칼리버를 부모님이 사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었죠.

내용은 간단하죠.

영국의 아더왕이 영국의 통일을 위해 주변의 기사들과 힘을 합쳐 싸운다는 내용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주제가만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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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TV에서 "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후속드라마로 12월19일부터 "화랑"이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화랑이 무엇인지 알고 보시면 드라마의 또다른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화랑(花郞)은 신라의 청년수양단체로써 귀족의 자제중 화랑의 뜻처럼 용모가 준수한 자들을 모아 심신단련과 학문수양등의 목적으로 창설된 단체로 신라 진흥왕때 만들어진 조직이다.

신라가 가장 뒤늦게 출발한 나라였지만 결국 삼국통일 이룬 원동력이 되었던 이유중 하나인것이 화랑이었다.

 

진흥왕때 원화(源花)가 기원이며 원화(源花)라고 하는 여성 우두머리가 낭도(郎徒)를 거느리는 조직으로 시작되었고 그후 여러가지 문제로 남성을 우두머리로 하는 화랑(花郞)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구성은 화랑과 낭도으로 되어있고 화랑들의 우두머리는 풍월주(風月主)라고 했습니다.

화랑은 4~7명정도이고 화랑을 따르는 낭도는 수천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화랑을 대표하는 인물은 흔히 우리가 아는 관창,무열왕,경문왕,김유신도 화랑출신들 입니다.

화랑의 계율인 세속오계는 원광법사가 지어줬다고 합니다.

세속오계 속에는 유교,불교,도교의 사상이 들어가 있다고 하네요.

이들의 사상기반은 풍월도(風月道)또는 선도(仙道)였다고 합니다.

드라마"화랑"에서는 화랑(花郞)뜻처럼 꽃미남들이 어떤 스토리를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KBS2TV월화드라마 "화랑"1차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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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해골13호 납작코가 되었네"

지금도 한번씩 흥얼거리는 부문인데 전체 주제가는 생각이 안나는데

제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만화영화인 태권동자 마루치아라치 주제가

끝 부분인데요.

어릴적 사당동에서 살았는데 아마 남성극장이지 싶은데 그 곳에서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머니가 아침에 극장안에 데려다주고 저 혼자 본 기억이 있는데 점심도 안먹고 또 보고 해서 극장에 나오니 깜깜한 밤이었던게 기억이 나네요.

몇번을 봤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계속 보았던 것 같아요

그 때는 지금처럼 좌석이 표시된 입장권이 아니라서 아무 곳이나 앉아서 계속 앉아서 봐도 괜찮았던거 같아요.

 

만화영화 내용은 파란해골13호의 습격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산 속의 동굴에서 마루치와 아라치는 생활하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장박사와 양사범에 의해 도시로 오게 되고 거기에서 태권도를 배우게 됩니다.

태권왕 선발하는 대회에 마루치가 참가하게 되는데 마지막 결승에서 파란해골 13호의 부하들이 나타나 크게 다치게 되고 마루치는 파란해골 13호에게 복수하려는 의지로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파란해골13호는 그의 부하들과 세계핵물리학자회의가 열리는 곳을 공격하여 장박사를 납치합니다.

파란해골13호는 장박사에게 광속으로 나는 우주선을 만들게하여 지구를 장악하려고 합니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파란해골 13호와 그의 부하들을 물리치고 지구의 평화를 지키고 장박사를 구하게 됩니다.

마루치와 아라치가 파란해골13호를 발차기로 주고받고 하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임정규감독이 만든 태권동자 마루치아라치는 1977년 7월에 극장에 개봉하였습니다.

그리고 난후 MBC에서 1988년에 TV시리즈로 리메이크되기도 했습니다.

이 만화영화이후에 어린이들에게 태권도가 선풍적으로 인기가 높아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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