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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03 :: 토정비결의 저자 아닌 토정 이지함

-토정 이지함 영정-

우리는 늘 토정 이지함을 떠올리면 "토정비결"생각될 정도로

토정비결을 쓴 인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지함이 토정비결의 저자라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토정비결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 이며 그전에는 어떤 문헌에도 토정비결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지금 현재 전해지는 토정비결의 내용과 비슷한 여러가지 문서과 전해지는 내용을 19세기에 묶어 편찬되었고 '토정'의 이름을 그냥 빌려 쓴것이라는 것입니다.

 

토정 이지함은 1517년에서 1578년까지 사신 분이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伯),형중(馨仲), 호는 수산(水山),토정(土亭) 입니다.

 

이지함의 가문은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집안이네요

목은(牧隱)이색의 6대손이고 아버지인 이치(李䆈)는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의금부 도사와 수원 판관을 지내었습니다.

사극드라마 특히 임진왜란을 다루는 드라마에서에서 자주 나오는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입니다.

외할아버지 김맹권은 세종때 집현전학사로써 단종의 보필을 부탁받을 정도로 세종의 신임을 받은 인물이고 단종이 폐위되고 사사되자 낙향하여 은거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이지함 자신은 과거를 보기는 했지만 처가가 역적집안이 되어 그이후에는 과거을 보지않고 방랑생활을 했고

그러던 1573년(선조6년) 56세때 능력과 지식을 가진 재야의 선비를 기용하는 정책으로 천거되어 포천 현감을 되고 1578년 아산현감으로 재직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후 1713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충남 아산의 인산서원과 보령의 화암서원에 제향되었고 문집으로는 "토정유고(土亭遺禞)"가 있습니다.

 

이지함은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경사지전(經史子傳)에 통달하였고 서경덕의 영향으로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도 해박한 지식이 있었다.

- 마포구 용강동에 위치한 이지함 테마거리- 

우리가 이지함에게 주목하야 할것은 민생(民生)을 위해 노력한 의지, 정책,경제사상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포천현감시 올린 상소문내을 보면 '덕(德)은 근본이고 재물은 말(末)이지만,본과 말이 상호보완하고 견제해야 사람의 도리가 궁해지지 않습니다. 재물생산에도 본과 말이 있으니, 농사가 본이고 염철(산업생산)은 말입니다.포천의 실정은 본이 이미 부족하니 말을 취해 보충해야 합니다.-중략-

어부와 소금을 굽는 자를 모집해 그 이익을 백성과 나누면 국가는 한 섬의 곡식도 소비하지않고 한 사람의 인력도 번거롭게 하지 않고서도 만 사람의 삶을 건질 수 있습니다'

가장 중점정책은 민생을 위해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농사만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민생정책을 위해 농사외 산업생산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휼이 곡식과 물자를 어려운 백성에게 나누어주는 것만 아니라

어려운 백성을 먹고 살거리를 만들어 주는것  즉 백성들의 각자의 힘과 능력에 맞는 생산활동을 하여 이익을 창출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서 어떻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들려고 했는지 단순히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고 있었는데 자꾸 알아볼수록 정말

대단한 분인 것 같습니다. 

- 토정 이지함의 묘소- 

어쩜 지금 이시대에 진정한 이지함과 같은 분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이지함은 그저 세상에 얽매이고 싶지않아 방랑생활을 하셨고 기인적인 생활을 하신 것으로만 알았는데 그 또한

그 시대에 민생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사신 것 같네요

 

그분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보신다면 뭐라고 하셨을지 궁금해지네요. 

 

 

 

 

 

 

posted by 위생단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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