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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3.25 :: 조선 성리학의 완성자 율곡 이이
카테고리 없음 2017. 3. 25. 10:28

 

요즈음 SBS수목드라마"사임당 빛의 일기"에 나오는 율곡 이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율곡 이이의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정6품)을 지낸 이원수이고 어머니는 우리

알고 있는 신사임당이고 그사이에 4남3녀중 3남으로 1536년(중종 31)에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드라마와 달리 이이의 집안은 대대로 관직에

나갔습니다.

본관은 덕수(德水),어릴적 불리던 아명은 현룡(見龍),자는 숙헌(淑獻),호는

율곡(栗谷),석담(石谭),우재(愚齋) 입니다.

아명을 현룡이라고 했던 이유는 사임당이 이이를 낳기전에 

흑룡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온 꿈을 꾸어서 붙인 이름입니다.

8살 때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으며 1548년(명종 3) 13살 때 진사초시에 합격하였고

16세 되던 해 어머니 사임당 신씨가 돌아가시고 그 뒤 얼마후 아버지가 서모

을 들인후 가정불화가 잦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한 후 금강산에 입산한 후 

승려가 됩니다. 요즈음으로 보면 가정불화로 청소년기 탈선이겠죠.

비록 승려로 지낸 것은 1년 정도였지만 이것은

평생 그를 괴롭히는 이력으로 남겨집니다.

1555년 20살 때 하산하여 승려가 되었던 것을 반성하고 과거공부에 전념하

여 9번이나 장원급제해 구도장원공으로 불리었습니다. 22살 되던해 5살 어

린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과 결혼을 했습니다.

23살때에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 이황을 만났고

29살에 대과에 급제한 후 호조좌랑으로 벼슬길에 오릅니다.

그 뒤로 예조좌랑,이조좌랑,이조판서등을 지냈으며 1584년 서울대사동에서 

영면하고 파주 자운산 선영에 안장되었습니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왕에게 상소를 가장 많이 올린 분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왕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은 분입니다.

아명인 이현룡에서 이이로 이름을 바뀐 일화도 있는데요.

율곡 이이가 11살 되던해에 아버지 이원수가 중병에 결려 사경을 헤맬 때

율곡이 조상을 모신 사당에 들어가 아버지의 쾌유를 빌고 자산의 팔을 찔러

거기서 나오는 피로 아버지 입속으로 흘려 넣어 간신히 기운을 차린 이원수

가 꿈속에서 백발노인을 만나 그 노인이 당신의 아들은 나라의 큰 유학자 될

것이니 이름을 이(珥)로 바꾸라고 하여 이현룡에서 이이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율곡은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6살 때 서울 수진방(지금

의 수송동 과 청진동)에 살다가 16살 때 삼청동으로 이사를 했답니다.

율곡은 정실부인인 노씨부인에게서는 자식을 얻지못하였고

두 명의 측실에서 2남1녀를 둡니다.

맏아들인 경림은 39살에 둘째 아들인 경정은 44살에 얻습니다.

지금으로 보아도 상당히 늦게 자식을 보신 것 같습니다.

천도책,동호문답,인심도심설,김시습전,만언봉사,기자실기,격묭요결,성학집요 

등 수 많은 저서를 남기셨고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의 통치이념인 성리학

을 안착시킨 대 유학자입니다.

율곡 이이의 일대기를 조금 알고 드라마를 보는 것도 재미가 2배로 되겠

죠.   

 

posted by 위생단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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