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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24 :: 암행어사의 대명사 박문수
본관: 고령(高靈)
출생 및 사망: 1691년(숙종17)~1756년(영조32년)
이조판서를 지낸 박장원의 증손
아버지는 박항한 어머니 공조참판을 지낸 이세필의 딸
박문수라 하면 흔히 암행어사로 유명한데 실제 어사로 파견되었던 것은
4차례정도되는데 어사로 활동했는 것이 설화로 전해지면서
허구로 각색되어 암행어사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영조가 총애했던 신하였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1723년(경종3)에 병과에 급제해 예문관검열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다음해 세자시강원설서.병조정랑에 부임하였고
1724년(영조1년)에 삭직되었습니다. 그당시는 노론이 집권할 때라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박문수는 소론이었거든요.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기용되기 시작하면서
그해 어사로 부임하여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합니다.
그다음해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전공을 세워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게 됩니다.
1730년 대사성.대사간.도승지로
1731년 어사로 다시나가고
1732년 선혜청당상
1734년 예조참판
1737년 도승지 역임뒤 병조판서
병조판서 재임시 병조에 있던 폐단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1738년 서원을 철폐시킨일로 탄핵받아 풍덕부사로 좌천
1739년 함경도관찰사
1741년 어영대장
1743년 황해도수군절도사
1745년 어영대장 재임
1749년 호조판서
1750년 수어사 역임
1751년 예조판서
1752년 왕손이 죽게되어 내의원제조로서 책임을 당해 제주로 귀양
1753년 우참찬
사후 영의정에 추증
많은 공직생활을 통해 많은 폐단을 없애고
어느 관료보다 일을 잘 처리했다고 합니다.
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할 때 명문가의 중심에서 벗어나
폭 넓은 인재등용을 주장하였고 당파를 구분하지 말고
유능한 인재등용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군정과 세정에 탁월해 영조의 국정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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