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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17 :: 조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3대 화가 2

조선시대 많은 화가들중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3대 화가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시대별로 나열하면 안견,김홍도,장승업이 되겠습니다.

그중 먼저 안견은 요즈음 방영하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사임당-빛의 일

기"를 통해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 안견 『몽유도원도』 -

안견은 조선초기인 세종때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입니다.

세종시절 정4품인 호군(護軍)으로 파격적인 승진한 것으로 보아 그의 능력이

뛰어나 세종의 총애를 받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견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어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모르고

또한 그의 작품 역시 추정되는 그림은 다수 있으나

확실히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몽유도원도」가

유일합니다.

「몽유도원도」는 안견이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꿈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으로서 중국의 화풍에 다른 여러가지 화풍을 받아들여 새로운 화

화풍을 만든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거기에다 당대 김종서,신숙주,정인지,박팽년,성삼문 등 사대부들이 쓴 칭찬하

는 글이 친필로 붙어 있습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서예적 가치또한 높은 작품입니다.

「몽유도원도」는 왼편은 현실세계를 오른편에는 꿈 속의 도원세계를 그리고

현실세계는 정면을 바라보고 왼편의 도원세계는 위에서 보는 부감법으로 그

려졌다.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 덴리대학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일본으로 간 시기는 임진왜란때 인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안견은 그 당시에도 가장 뛰아난 화가로 인정되었으며

사후에도 조선후기까지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많았습니다.

- 김홍도 『금강사군첩』 -

다음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천재화가인 김홍도에 알아보겠습니다.

1745년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해 입니다.

증조할아버지가 만호벼슬을 하신 것으로 보나 집안이 원래 무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김홍도는 1765년 영조가 71세 되던 해에 큰 잔치를

열었는데 이를 위해 병풍을 만들었는데 당시 갓 스물이 이었던 김홍도가 그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을 보아서는 20살이전에 도화원 화원으로 들어간 것으

로 보입니다.

- 김홍도 『안릉신영』 -

그후 영조의 어진과 왕세손의 초상화를 그리며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

았으며 그 인연으로 정조는 김홍도가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수 있도록 적극

적으로 후원하게 됩니다.

"김홍도의 그림을 구하려는 자들로 인해 잠자고 먹을 시간도 없을 지경이었

다" 는 말이 전할 만큼 그림으로 명성이 대단했습니다.

그로인해 정조시대에는 사포서의 감목관,안동의 안기찰방,충청 연풍현감등

벼슬을 하였습니다.

많은 그림을 남기셨고 당대의 최고의 화가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늘 생활은 궁핍했고 건강도 좋지 안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술가로서는 낭만적이었지만 좋은 가장은 되지 못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매우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키도 크고 성격또한 좋아 그를 보면 좋아하지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네요.

요즈음 세상에 태어났어도 최고의 화가가 되지 않았을까요.

김홍도가 그린 다양한 그림중에도 가장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풍속화이고 인물의 살아있는 듯한 묘사와 장면의 극적인 구성이 탁월하다

할 것입니다

- 김홍도의 풍속화 -

그의 풍속화를 통해 그 시대의 서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어

사료적인 가치 또한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300여점의 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호탕한 필묵법과 정교한 묘사력으로 조선시대의 마지막 천재화

가인 장승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장승업 『군마도』 -

1843년에 태어났고 1897년 55세에 생을 마감합니다.

어릴 때는 고아로 자라 그의 출생에 대해 정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본관은 대원(大元)이고 호는 오원(五園),취명거사(醉暝居士),문수산인(文峀山

人) 입니다.

그는 단원 김홍도를 의식하여 스스로 오원(五園)으로 할 만큼 화가로서의 자

부심은 강했습니다.

장승업은 이응헌의 집에서 기거하며 중국 유명한 화가들의 서화를 접하

고 그림에 눈을 뜨게 됩니다.

장승업은 산수,인물,화훼 등 다양한 소재를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여 짜임새

있는 구성과 개방된 공간,힘차고 능숙한 필법,강렬한 묵법과 섬세한 설채법

의 대조 등 그림전체의 생동감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에서 중국화풍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

고 합니다.

 

그래도 워낙 그림의 수준이 뛰어나 당시에는 제일의 "신품(神品)화가"로 칭

송받았습니다.

그는 망해가는 조선을 지켜보며 화가의 일생을 삶으로서 안견,김홍도가 실던

시대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안견,김홍도 못지않은 창작력과 고도의 세련미 넘치는 그림을 보여줍

니다.

장승업 또한 명성이 자자하여 정6품의 관직도 받고 고종의 명령으로 궁궐에

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나 성격이 워낙 자유분방하여 오래 궁에 있지못하

고 나와 고종의 노여움을 사기도 합니다.

그리고 민영환,흥선대원군,민영익,오세창 등 당대의 유명한 인사들이

그를 후원하였습니다.


- 장승업의 작품 -

장승업은 19세기 말 암울했던 시대를 밝히는 찬란한 예술혼이었으며

조선말 회화사적으로 지대한 공헌하였습니다.

또한 모든 회화분야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을 확립하였습니다. 

그의 화풍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posted by 위생단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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