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홍(任士洪) 조선시대의 간신으로 알려진 그도 처음부터 간신은

아니었습니다.

글씨는 당대 모두가 인정한 최고였으며 특히 해서(楷書)에 뛰어났습니다.

본관은 풍천(豊川)이고 자는 이의(而毅) 입니다.

효령대군의 아들 보성군의 사위이고 세아들중 두 명이 각각 예종과 성종의

사위일 정도로 배경이 든든한 집안이었습니다.

1465년(세조11)에 문과에 급제하여 그 뒤 여러관직을 거쳐 특히 홍문관교리

재직시에 강직한 성품으로 직언을 하는 소신을 가지고 있어

성종의 총애를 받아 대사간,예조참의,승지,도승지,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중국말에능통하여 명나라사신을 하기도 하였고 승문원에서 중국어를 가르

쳤습니다.

 

그런 그도 삼사의 대간들이 성종의 총애를 받으며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

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면서 탄핵상소을 올리게 되고 처음에는 성종

이 앞장서 막아보았지만 계속되는 상소를 이기지 못하고 같은 당파였던

유자광과 함께 유배를 가게되고 더이상 성종시대에는 활약을 하지 못하게

되고 와신상담 복수의 칼날을 갈아오다

드디어 연산군이 등극하자 연산군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은 재기에 성공하고

무오사화,갑자사화를 일으켜 자신들을 유배를 보낸 세력들에게 철저히

복수하게 됩니다.

연산군 당대에 연산군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를 통하여 집행하도록 할

정도로 절대신임을 얻어 무소불위에 권력을 휘둘렸습니다.

또한 영화"간신"에 나오듯이 조선팔도의 아름다운 여자를 뽑아 바치는 일

을 하는 채홍사로 임명되어 처음에는 소극적이 었으나 연산군이 압박하자

임사홍은 채홍사로 '운평','흥청'을 뽑아 연산군에 바칩니다.

그러던 그도 중종반정으로 인해 죽음을 맞게되고 부관참시를 당하게 되고

재산또한 몰수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초기 유자광과 한배를 탔으나 중종반정직전에 유자광은

배를 갈아타고 중종반정의 공신이 되고 몰수된 임사홍의 재산일부를

유자광이 가져갔다고 하니 참 알수 없는 일이죠.

간신과 충신은 종이한장 차이라고 했는데

간신은 자기개인을 위한 것이고 충신은 자기보다 먼저 나라를 생각하는 정

의 차이라고 하겠죠.

그 역시 자기를 유배보낸 그들의 복수만을 생각하다보니 희대의 간신이

되었겠죠.

 

  

 

 

 

posted by 위생단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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