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최고의 여성정치가 "문정왕후"
올해 2016년 8월5일 개막하는 리우올림픽때문에 우리나라 국가대표들이 많은 땀을 흘리며 훈련하고 있는데 그중에 한곳인 태릉 선수촌이죠
뜬금없이 올림픽애기가 나오느냐고요
태릉선수촌의 이름에 태릉이 있는데 이 태릉이 문정왕후의 릉이거든요
문정왕후가 파란만장한 일생이다 보니 드라마로 많이 다루어진 것 같습니다.문전왕후를 맡은 배우또한 대단하신 분들 같네요
잠깐 살펴보면
드라마 제목 |
방송사 |
문정왕후 |
교동마님 |
MBC |
김용림 |
풍란 |
MBC |
김혜자 |
임꺽정 |
SBS |
김 청 |
조광조 |
KBS |
김민정 |
여인천하 |
SBS |
전인화 |
대장금 |
MBC |
박정숙 |
천명 |
MBC |
박지영 |
옥중화 |
MBC |
김미숙 |
참 많이 다루어졌네요
문정왕후는 본관은 파평(坡平),성은 윤(尹),아버지는 윤지임(尹之任)이며 명종의 어머니이다.
연산7년(1501)부터 명종 20년(1565)까지 사신 분입니다.
문정왕후는 연산군을 폐위시킨 반정을 통해 왕이 된 중조의 세번째 왕비입니다. 중종의 첫번째 왕비는 단경왕후 신씨가 있었지만 신수근의 딸이었기 때문에 서로 끔직히 사랑하였지만 반정세력에 의해 폐출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 맞은 두번째 왕비는 반정주도세력인 윤임의 여동생인 장경왕후 윤씨 였는데 나중에 인종이 되는 원자를 낳고 사망하게 됩니다.
아리러니하게도 후에 문정왕후세력에게 제거당하는 윤임에 의해 중종의 세번쩨 왕비가 됩니다.
왕비가 된후에도 줄줄이 딸만 낳았고 신하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중종때문에 왕비라고 해도 언제 어떻게 될지몰라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세자의 보호자라 하여 세자 덕분에 겨우 자리를 지킬수 있었습니다.
그후 중종의 총애를 반았던 경빈 박씨와 복성군이 정쟁에 밀려 죽음을 당하는 모습, 윤임의 견제등 정치의 쓴 맛을 경험하면서 비참함과 치욕을 당하지만 않고 앞날의 대비로 쌓게 됩니다.
그후 문정왕후는 30대후반의 나이에 아들을 낳는다. 그 아들이 훗날 명종이다.
드디어 바라던 아들을 낳았지만 본격적인 정쟁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드라마 "옥중화"에 나오는 대윤,소윤이 이당시 생긴 말이다.
대윤은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을 따르는 세력을 말하고
소윤은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을 따르는 세력을 말합니다.
인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윤세력은 윤원형등 소윤세력을 제거하게 된다. 그러나 병악하던 인종은 즉위 8개월만에 승하하게 되고 유일한 중종의 적자인 경원대군(명종)이 12살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지금 드라마 "옥중화"에서 인종의 독살이 나오나 이것은 야사에 있을뿐 실제 역사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녀의 아들이 왕위에 오를때까지 수 많은 위기가 워낙 많다보니
아마 드라마의 소재가 될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아들이 왕으로 즉위한 1545년부터 1553년까지 8년간 수렴청정을 합니다.
물론 수렴청정이 끝난 후에도 그녀의 동생 윤원형을 통해 생을 마칠때 까지 정치에 관여합니다.
수렴청정기간 을사사화,양재역 벽서사건,정미사화를 통해 윤원형을 필두로환 소윤파는 윤임의 대윤파 등 정적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장가하였다.
문정왕후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써 불교중흥정책을 시행하였고 승과를 부활시켰다. 정난정의 소개로 만난 봉은사의 승려 보우를 병조판서까지 시킬 정도였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문정왕후 역시 1565년 65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후 1565년 윤원형은 탄핵되었으나 문정왕후의 동생이기때문에 목숨은 보전 할수 있었다. 그러나 언관들은 윤원형의 소윤파에 탄핵을 계속하였고 윤원형과 정난정은 황해도 강음(江陰)에 유배되었다.
그리고 정난정의 횡포와 윤원형의 거대한 권력과 재력때문에 조정에서는 사사를 청한다는 애기를 듣고 윤원형과 정난정은 스스로 자결한다.
어찌보면 안좋은 역사의 한페이지 같으나 문정왕후가 잘한 일도 있습니다.
서얼허통(庶孼許通)의 추진이다.
즉 첩의 자녀인 서얼고 과거를 치르고 관직에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것
물론 문정왕후 사후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윤씨는 천성이 강한(剛狠)하고 문자(文字)를 알았다. 윤비(尹妃)는 사직의 죄인이라고 할 만하다. 서경(書經) 목서(牧誓)에 암닭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라고 하니 윤씨를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
[명종실록의 내용중에서]
조선의 잠시나마 조선의 국모였던 문정왕후에게 실록편찬자들이 명종실록에 쓴 문정왕후에 대한 평가이다.
역사의 기록은 승리자의 몫이라서 그런지 혹독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어쩌보면 문정왕후가 살아있을때 꼼짝못했던 못난 남자들의 소심한 뒷끝이 아니었을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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