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11.01 :: 현모양처의 대명사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

 

우리가 흔히 아는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오만원권의 표지모델, 율곡 이이의 어머니등 조선시대 최고의 현모양처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뛰어난 시와 글씨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준

예술가였습니다.

 

그럼, 예술가로서의 신사임당의 삶을 알아보겠습니다.

신사임당은 1504년(연산군 10년)외가인 강원도 강릉 북평촌(현재 강릉시 죽헌동 소재)에서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인 용인 이씨 사이에서 다섯 딸 중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본관이 평산이고 고려개국공신인 신숭겸장군의 18대손이다.

할아버지은 영월군수로 재직한 적이 있다.

아버지 신명화는 13세에 진사가 되었으나 그 후에 원래 벼슬에 관심이 없어 더이상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벼슬에 나가지 않은 덕에 기묘명헌(己卯名賢-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의 한 사람이었으나 1519년 기묘사화의 참화를 면하였다. 

외할아버지인 이사온이 신사임당의 어머니를 아들잡이로 여겨 출가후에도 친정에 살도록 하였다.

그래서 신사임당은 외가있는 강릉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유교가 통치이념인 조선시대에서 어떻게 처가살이가 가능했는지 잠깐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가족문화로 뿌리내린 부계중심의 가족문화는 17세기 이후의 문화이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중기까지 결혼을 바탕으로 한 가족문화는 여성의 거주지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사임당과 그의 어머니가 친정쪽에서 생활을 한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신사임당이 19세 되던 해 1522년에 덕수 이씨 가문의 이원수와 혼인을 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4남3녀를 낳아 길렀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모두 아는 셋째 아들이 율곡 이이입니다.

그 후 1551년 48세의 일기로 작고하셨습니다.

 

신사임당이 교양과 학문을 갖춘 예술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천부적인 재능뿐만아니라 그 재능를 발휘 할수 있도록 도와준 좋은 환경이 있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것을 알수 있는 일화가 있는데 그녀가 7살되던 때 

그녀의 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의 산수화를 신사임당에게 주었는데  마냥 그림이 좋았던 사임당은 열심히 안견의 화풍을 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임당은 아버지에게 자기가 봐 왔던 그림들이 중국 그림을 따라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고 하여 아버지가 이유를 묻자

오늘 상인이 쏘가리를 가지고 왔는데 그림으로 본 것과 달라 물어보니 그림의 것은 중국 쏘가리라 하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사물을 보는 통찰력이 뛰어난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외사에서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교육을 힘껏 받았으며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전형적인 남성우위의 사상을 가진 남편을 만나지 않고 아내의 말과 생각을 인정해주는 좋은 남편을 만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녀는 풀벌레,포도,화조,어죽(漁竹),매화,난초,산수 등이 주된 화제(畵題)로써 "초충도"가 유명한 독보적인 화풍을 만들어냈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섬세하여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고 햇빛에 말리려하면 닭이 와서 진짜 벌레인줄 알고 쪼았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신사임당의 그림은 자리도,산수화,초충도,노안도,연로도 등 40폭정도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사임당은 산수화를 잘 그리는 화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율곡의 스승인 어숙권은 사임당을 안견 다음가는 화가로 칭송하였습니다.

 

 

글씨 또한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현재 초서 여섯 폭과 해서 한폭이 남아있습니다.

얼마 안남은 글씨에서 그녀의 고상한 정신과 기백을 볼 수 있습니다.

1868년 강릉부사 윤종의는 사임당의 글씨를 후세에 남기고자 그 글씨를 판각하여 오죽헌에 보관하였다.

거기서 사임당의 글씨를 "획이 그윽하고 고상하여 정결하고 고요하여 더욱 더 태임의 덕을 본뜬 것임을 알수 있다"며 격찬을 하였다.

 

 

신사임당의 재능은 아들 이우와 큰 딸인 매창으로도 이어져 뛰어난 예술가로 키워냅니다.

 

신사임당이 현재까지 칭송받는 이유인 율곡 이이를 키워낸 현모양처의 표상이 아니라 시와 그림에 능했던 예술가로 재조명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posted by 위생단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