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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9.19 :: 왕의 남자 내시

 

요즈음 KBS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달빛"이 인기가 많은 거 같아요.

김유정이 맡고 있는 홍삼삼이가 내시인데요

내시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드라마를 보는데 도움이 될것 같네요.

 

내시는 우리가 흔히 아는 거세된 남성으로만 알고 있는데

조선시대로 국한한다면 맞는 말이나 남성기능을 상실한 환관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시는 조선시대의 내시와 성격이나 신분이 많이 달랐습니다.

고려때는 내시와 환관이 별도로 있었고 고려 내시는 환관이 아니고 성불능자도 아니었다.

고려 초기에는 내시는 가문과 학식을 갖춘 엘리트 집단으로써 문벌집안의 아들,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지식이 뛰어난 사람들이 내시로 등용되었다.

내시의 역할은 왕의 옆에서 국정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왕 행차시 동행,왕명 초안작성,국가기밀 관리,유교경전 강의,왕실재정 담당,민정을 살피는 역할 등 왕의 최측근으로 일했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의 대통령비서실,조선시대의 승정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고려 내시는 고려 건국부터 있었으나 무신정변이후에는 사라지게 됩니다.

물론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의 내시처럼 거세한 남성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환관으로 불리었고 액정국에 소속돼 궁중의 잡역을 담당하였고 내시가 엘리트집안 자제였다면 환관은 대부분 노비,관비소생,천민집단 부곡 출신이었다.

내시와 환관이 고려시대만 해도 전혀 다른데 내시하면 당연히 거세된 남성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고려말 원나라의 영향때문이었다.

원나라에서는 환관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다. 이와같은 현상은 원나라의 부마국가였던 고려 무신집권기에도 그대로 전해져 왕의 신임을 받는 환관이 내시로 임명되었다.

그러다보니 내시제도가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엘리트집단이었던 내시가 숫자가 늘어나면서 쉽게말해 질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공민왕때 환관의 관청이 신설되었는데 관청의 이름이 내시부(內侍府)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내시부 소속 환관과 원래의 내시가 혼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최고 엘리트로 지칭되던 내시는 환관의 별칭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조선 세종 때 내시가 환관 내시와 용어상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이유로 고려 내시를 내직(內直)으로 개칭하고 세종12년에 이를 완전히 폐지하고 환관과 구별되는 고려 내시제도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고종 1894년 갑오개혁후 환관제도 또한 완전히 폐지됩니다.

 

조선시대에는 내시의 득세를 억제하는 정책으로 인해 고려에 비해 세력이 약화되었고 종2품의 품계까지 허용되었지만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내시는 품계의 고하를 막론하고 궐내의 음식물 감독,왕명전달,궐문 수직,청소 등의 잡무에 국한되었습니다.

지위가 하락하고 영향력이 축소된 반면 의무규정은 강화되었다.

자질향상을 위해 사서(四書)와 소학,삼강행실 등을 교과목으로 교육울 받아야 했고 매월 시험을 쳐야 했다.

시험을 통해 통(通),약통(略通),조통(組通),불통(不通) 등의 성적평가를 받았고 근무일수와 함께 고과(考課)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고과법에 따라 1년에 4번 근무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교육을 철저히 한 것은 자질향상과 통제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내시는 왕의 측근으로서 궐내에 상주해야 하기때문에 거세자만이 임명될 자격이 있었다. 원래 선천적인 거세자가 주된 충원자였으나 스스로 거세해 내시로 임명될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환관은 내시부에 속했으며 대전,왕비전,세자궁,빈궁전 등에서 감선,사명(명령전달)및 궐문수직,청소등의 잡무를 맡아 보았다.

내시부는 종2품의 상선 이하 상온,상다,상약,상전,상책,상호,상탕,상세,상촉,상훤,상설,상제,상문,상경 및 종9품의 상원에 이르기까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속으로 서원2명과 사령1명이 있었다.

또한 환관집안의 대를 끊기는 것을 배려해 양자를 들일수 있도록 하였고

처첩을 거느리기도 했는데 환관의 아내를 환처 또는 동정녀라고 하였다.

환관은 궁안에 거주하는 장번환관과 궁궐에서 가까운 종로구 봉익동과 효자동에 집단 거주하면서 출퇴근하는 출입번 환관이 있었다.

또한 왕을 가까이 모시는 장번환관은 대전 장번내시로 대감호칭을 받을 정도로 부귀영화를 누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환관은 모시던 왕이 승하하게 되면 궁궐 밖에 나와 살았고 죽을 때까지 소복하였다고 합니다.

 

대략 내시에 알아보았습니다.

드라마보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위생단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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